믿음은 눈 먼 사각지대를 만든다.

문제는 무엇을 ‘보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이해하는갸’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

1990년대 초, <시애틀 포스트인텔리젠서 Seattle Post-Intelligence>신문사에서 일하던 예술 디자이너이던 데이브 그레이는 그때도 신문 산업은 여전히 어려웠기에, 다른 직업을 찾을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학교수를 염두해 두고 있었다.  그는 인근 대학을 찾아 미술 교수 한 분을 만났고, 교수직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교수는 그를 탐탁잖아 했다.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잔뜩 쌓여 있는 이력서를 보여주며, 교수 자리에 공석이 생길 때마다 수백 통의 지원서가 날아드는데 공석이 생기는 경우도 매우 드물고, 무엇보다 그가 교수 될 자격이 모자란다는 것이었다.

그는 뒤이어 지역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는 친구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 역시 석사 학위가 없으면 교수직을 얻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그는 석사 학위도 없었다.)

그는 친구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친구가 갖고 있던 석사 학위를 따는 것보다 교수 자리에 지원하는 것이 방법 면에서 훨씬 더 쉽고 빨랐기 때문이다. 또한 마침 지원 방법도 알고 있으므로 일단 시도해서 결과를 보기로 한 것이다.

무엇보다 친구가 옳다고 판명이 나도 그가 잃을 것은 없었다. 추후 석사 학위를 따면 그만이니까, 반대로 친구가 틀렸다면 그는 많은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었다.

결말이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그는 석사 학위 없이도 교수직을 얻었다. 물론 친구가 그에게 일부러 거짓말을 했거나 그를 잘못 인도하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는 교수직에 대해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었고, 이를 공유하며 그를 도우려 애썼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지식 속에는 무엇이 가능한지, 혹은 무엇이 불가능한지에 관한 일련의 믿음이 포함되어 있었다.

문제는 친구의 믿음이 제약 사항을 창조해냈고, 그 제약 사항은 석사 학위 없이 교수직에 지원하는 등의 특정 행동을 상상할 수도 없는 터무니 없는 짓으로 여기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친구는 자신을 제한하는 믿음, 즉 가능성의 범위를 좁히는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

그가 석사 학위가 필요하다는 친구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고 가정해보다.그랬다면 그 상상에 경계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경계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영역과 범위가 줄어들었을 것이다. 스스로를 제한하는 믿음을 받아들였다면 그는 아마 불필요한 일에 적어도 2년이라는 세월과 상당히 많은 돈을 쏟아 부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석사 학위를 따는 게 터무니없이 비싸고 쓸데없는 노력이라고 치부하며 아예 교수직에 지원할 생각 자체를 포기했을 수도 있다.

믿음은 필요하다. 믿음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믿음은 생각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다. 우리는 믿음을 사용해 세상을 항해하며, 믿음은 우리의 행동을 인도한다.

하지만 믿음은 우리를 제한하기도 한다. 경계를 뜻하는 단어인 ‘리미널Liminal’과 제한을 뜻하는 단어인 ‘리미트Limit’는 같은 라틴어 어원에서 파생된 단어다. 우리는 생각할 수 있게 해준 그 경계가 한편으로는 우리의 상상을 제한하기도 한다. 선의를 가진 절친한 친구조차도 자신을 제한한다는 믿음을 가져, 당신의 가능성과 기회를 차단할 수 있다. 그의 경우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문턱’과 ‘출입구’라는 단어에서 그가 강조하려는 뜻이다. 우리 주위에는 매일 언제나 기회가 도사리고 있지만 대개의 경우 우리는 알아채지 못한다. 자신을 제한하는 믿음이 눈을 가려 실재하는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하기 떄문이다.

그에 비해 리미널 씽킹, 경계에서 생각하기는 자신을 제한하는 믿음을 발견하여,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문을 열어젖힐 가능성을 눈뜨게 해준다.

– 기적의 리미널 씽킹, LIMINAL THINKING, 데이브 그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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