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어려움을 보여주다.

안영은 경공이 나라를 다스림에 걱정거리가 무엇이냐고 묻자 ‘사직단의 쥐’라고 답한다. 

경공이 묻자

“사직단이란 나무를 얽어 흙을 발라 지은 건물이지요. 쥐란 놈이 그곳에 의탁해 살고 있습니다. 불로 태워버리면 나무가 탈까 두렵고, 물을 부어 내쫒고자

해도 흙이 모두 무너져 내릴까 걱정입니다. 이렇게 쥐를 죽여 없애지 못하는 것은 그곳이 사직단이기 때문이지요. 

무릇 나라에도 역시 사직단의 쥐 같은 이

가 있으니, 바로 임금 주위의 신하들입니다. 안으로는 임금과 윗사람에게 선악을 은폐시키고 밖으로는 백성에게 권세를 팔아먹습니다. 이들을 없애지 않으면 혼란이 생기고 죽여 없애려 해도 임금의 보호를 받고 있어 마치 임금의 복부를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역시 나라의 쥐입니다. 

어느 시대나 권력 주변에는 사직단의 쥐와 같은 존재들이 있다. 이들은 어떨 때는 그럴듯한 전문성을 내세우고, 어떨 때는 최고 권력자의 인맥을 이용해 국가와 백성의 이익을 갉아먹는다. 

안영은 경공이 다스리고 있는 제나라 정치를 말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 내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하는 보편성을 띠고 있다.

안영은 기득권을 옹호하는 정치와 백성을 위한 인치의 차이를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경공의 명을 받고 동아 땅을 다스렸을 때의 일이다.
경공은 지난 3년간 안영이 지방의 수장으로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들어오는 소문은 온통 안영에 대한 비난 일색이었다. 

경공은 불쾌하게

여겨 안영을 면직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안영이 이렇게 변명했다.
“저는 저의 과실이 무엇인지 압니다. 다시 3년만 더 다스릴 수 있도록 해주시면 틀림없이 좋은 소문이 퍼지도록 하겠습니다.”
경공은 이 요청을 받아줬고 3년이 지나자 정말 안영을 칭찬하는 말만 들려왔다. 

경공은 안영에게 상을 내리려고 했다. 이에 안영은 사양하며 3년 만에 자신

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이유을 설명했다.
“지난날 동아 땅을 다스릴 때는 간악한 무리의 통로를 막고 사악한 무리가 드나드는 문지기의 임무를 강화하자 이에 불만을 느낀 부패한 무리들이 저를 미

워했습니다. (…..) 재판을 할 때는 귀한 자나 강한 자를 피하지 않고 공정히 하자 이들이 나를 미워했습니다. (군주를 가까이서 모시는) 좌우 신하들의

요구(청탁)가 있을 때는 법에 맞으면 들어주고 맞지 않으면 거부했더니 좌우 측근조차 싫어했습니다. (…..) 이런 까닭으로 세 종류의 못된 자들이 나를

밖으로 흠잡고 두 종류의 참소하는 자들이 안에서 나를 비방했던 것이며 이것이 3년 사이에 임금의 귀까지 들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 3년 동안 저는

이를 바꾸었습니다. (……) 이렇게 하자 이들은 밖으로 나를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안으로 나를 추켜세우기에 바빴습니다. 

이것이 3년 동안 임금의

귀에 들어갔던 겁니다. 지난날 제가 했던 일은 주벌을 내릴 일이라 여기셨지만 사실 상을 줘야 할 일이었고, 지금 한 일은 상을 줄 일로 여기고 계시지만

사실은 이것이 바로 징벌을 받을 일입니다.”

 3년은 공명정대하게 국가와 백성을 위해 일했고, 이후 3년은 군주와 접촉하거나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층을 배려한 정치를 했다는 의미다. 그라나

군주에게 전해지는 보고는 정반대였다. 

경공은 안영의 깨우침에 무척 놀랐을 것이다. 최고 권력자나 경영자가 진실을 듣기가 이만큼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

는 일화이기도 하다. 

<안영晏嬰: 제경공(기원전 547~490년 재위) 시기의 명재상으로, 자는 평중平仲이다. 청렴결백한 관리의 모범이자 군주에세 간언하는 소신있는 정치인을 대

표하는 현신이다. 특히 외교력과 언변이 뛰어나 제환공 이후 권력 다툼으로 세력이 약해진 제나라를 강대국의 반열에 올리는 업적을 이루었다. 안영은 권세

가 높은 집안이 아니었음에도 영공,창공, 경공 3대에 걸쳐 수십 년 동안 재상의 자리에 있었고, 군주의 안색을 살피지 않고 직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백

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한다는 확고한 신념, 남은 수레 하나까지도 반납하고 은퇴할 만큼 청빈한 태도, 오직 법과 원칙에 근거해 펼치는 논리 정연한 언변을

갖췄기에 가능했다. 

<안자춘추, 총 8월 215장> 

사마천은 <사기>에 “안영이 살아있다면 그를 위해 채찍을 드는 마부가 되어도 좋을 만큼 흠모한다.”고 했을 정도로 그의 신념과 태도를 높이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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